깔끔하게 정리된 모노톤의 사무실 안에서는 종이를 넘기는 소리만 들렸다. 프레젠테이션보다 서면 보고를 더 선호하는 젊은 사장의 입맛에 맞게 비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 왔다. 세훈은 다섯 장 쯤 되는 서류를 세 번 정도 꼼꼼하게 읽었다. 비서는 그의 뒤쪽에 한 걸음 물러나 조용히 두 손을 모으고 그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급스러운 사무...
그 날 이후로 백현은 하루도 빠짐없이 피아노를 쳤다. 현기증이 나고 어지러워 죽을 지경이 되면 그제야 뭔가를 새가 모이를 먹듯 아주 조금 먹고서 물을 몇 모금 마셨다.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르다가 또 피아노를 쳤다. TV볼륨 때문에 들어오던 민원의 내용은 한이 맺힌 듯이 울려대는 밤낮 없는 피아노 소리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타협은 없었다. 백현은 누가...
찬열은 복도의 센서등이 꺼질 때까지도 그렇게 등 뒤에서 닫힌 문을 등지고 서 있었다. 가슴 저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참을 수 없는 떨림이 온 몸을 부들부들 떨리게 했다. 덜덜 떨리는 주먹을 주체하지 못하고 제 가슴을 퍽퍽 쳐 봐도 쉽사리 가라앉질 않는데 더 미치게 하는 것은 집 안에서 들리는 백현의 울음소리였다. 문 앞까지 온 인기척은 고리를 잡았다 놨다만...
* 바닷가를 따라 펼쳐진 모래사장은 다행스럽게도 아직 덜 풀린 날씨 덕택인지 복잡하지 않았다. 백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사람 많고 복잡한 건 딱 질색하는 찬열에게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차가 멈추자마자 문을 열고 바닷가로 달려 나가는 백현의 등 뒤로 익숙한 말투로 역정이 날아든다. ‘넘어지면 뒤진다.’ 그 말에 백현은 보이지 않게 입을 비죽였다. 넘...
“박 과장님, 부장님이 지금 찾으시는데.”“나 업무 마무리할 거 남았는데.”“그렇게 말하실 거라고, 그래도 그것보다 무조건 급한 일이라고 빨리 와 달라고 하시던데요.” 그렇지 않아도 외국계 기업과의 저작권 소송이 걸리는 바람에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상사의 부름이 이유가 뭐든 달가워할 이유가 없었다. 찬열은 지금까지 보던 서류에 포스트잇으로 대충 표시를 해 두...
백현은 그의 눈에 담겨 있던 분노가 넘치다 못해 흘러내리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아파왔다. 이미 터져버린 뺨의 고통은 중요치 않아졌다. 나는 왜 박찬열을 자꾸만 괴롭게 하는 걸까. 백현은 그가 자신에 대해 그토록 불안해하는 이유는 결국 자신의 과거에서 온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알 수 없는 것은 도대체 얼마나 더 노력해야 그가 자신의 마음을 ...
찬열은 퇴근시간이 10분가량 남은 시계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 손으로 펜을 돌리는 중이었다. 저 멀리에 있는, 유리로 된 부장실에서는 낙하산 놈팽이 새끼가 실내 흡연을 하는 건지 연기가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부임하자마자 저러다가 연기가 센서를 건드리는 바람에 소방차까지 왔었는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게 분명했다. 한 대를 다 피우고 차가운 표정으로 부장...
안녕하세요, 포스타입에서 찬백 블로그 'Quiet Season'을 운영 중인 로테rotte입니다.오랜만에 공지사항으로 인사드리죠 : ) 다름이 아니라 이번 시즌에 연재작과 재연재작을 비롯해 총 세 개의 스토리를 연재하고 또 몇몇 바뀐 사항들을 구독자분들, 그리고 독자분들께 전해드리고자 이렇게 공지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연재작> 1. 찬백, TR...
그 날 이후 찬열은 며칠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연락할 방법이 없는 백현은 그저 하염없이 소파에 앉아서 그의 기척을 기다릴 뿐이었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을 잤다가 집에 남은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혼자 잠들기를 무서워하는 걸 알면서…. 그가 없이 잠든 것이 어느새 사흘 째였다. 식탁 위에 구겨진 채로 놓여 있던 포스트잇만이 그의 행방을 짐작할 수 있...
퇴근하고 집에 자신이 없으면 거의 세계대전 급의 분노를 경험할 것 같아 백현은 일으키기도 힘든 몸을 겨우 다잡고 집으로 향했다. 아까 비상금으로 챙겼던 택시비가 왕복으로는 부족해서 결국 걸어가야만 했다. 웬 청승이람. 백현은 다리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조금 걱정이 되는 차였다.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거리의 풍경들은 지나치게 일상적이었다. 그는 ...
작고 후덥지근한 방 안을 둥둥 떠다니는 노랫소리에는 가사가 없다. 콧노래로 흥얼거리며 잠시 후에 있을 공연을 위해 얼굴을 매만지는 손길은 생각보다 느긋했다. 무대 조명은 생각보다 꽤 좋은 효과를 가져서 눈가를 따라 짙은 아이섀도로 음영을 넣으면 그 메이크업을 한 날은 그렇게 인기가 좋을 수 없었다. 하얀 얼굴에 마지막으로 입술 색을 덧입힌 남자는 안 그래도...
비 온 다음날은 땅이 아직 굳지 않아 다소 질척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젖지 않게 하려고 노력한 운동화는 상의가 젖으면서 조금은 같이 젖었던 탓에 아직 약간 축축했다. 그렇지만 진흙탕을 또 맨발로 밟을 수는 없어서 백현은 결국 운동화를 신고 나왔다. 그는 로만티코를 관리하는 조직원 중 한 명이 다짜고짜 방문을 열어젖히는 바람에 기겁을 하며 잠에서 깬 참이...
찬백쓰기 좋아하는 연성러입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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