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세훈에게서 돌아서면서 건물 바깥에 오롯이 서 있던 그를 보았다. 설마 하면서 들어갔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이라 백현은 그대로 다시 달려 나왔었다. 무단으로 건물 바깥에 나간 대가는 컸다. 아니, 컸었다. 백현은 최소 일주일은 감금되어 물만 마실 수 있는 벌을 받았어야 마땅했다. 그렇지만 정운은 씩씩거리며 백현을 끌고 들어간 기세와는 전혀 다르게 그...
찬열은 곤히 잠든 백현을 바라보며 뒷걸음질로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온 뒤, 지상으로 재빠르게 올라갔다. 출근시간이 되어 하나둘 로만티코로 향하던 여자들이 그가 이곳에 걸음 했다는 사실에 소스라칠 듯 놀라는 모습들에도 아랑곳 않은 찬열은 바깥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던 준면도 말없이 그대로 지나쳤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준면의 얼굴에 언뜻 수심이 가득한 표정이 스...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가방을 벗어던진 찬열은 목을 옥죄는 것 같은 갑갑한 교복을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침대 위로 던진 넥타이가 힘없이 풀석 떨어지는 소리가 처량하다. 아까 녀석에게 이름을 물어보려다가 저도 모르게 망설이고 있던 자신이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왜? 왜 물어보지 못했어? 병신 같은 게. 결국 물어본 것은 이름이 아닌 나이였고. 쪼그만 녀석이 열...
속이 불편하면 토해버리는 것은 어릴 적부터 고치지 못한 습관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마음이 불편하면 모조리 토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공개적으로 구토를 해버리는 일은 잘 없었다. 당황한 팀원들과 민석이 허둥거리며 무엇을 어찌 해야 할지 모를 때, 찬열은 백현에게 다가와 등을 두어 번 두드리며 이제 괜찮으냐고 물었다. 아니, 괜찮지 않았다. 백현은...
깍지 낀 손을 하늘로 쭉 뻗어 기지개를 켰다. 지루해. 반복되는 복사기 소리가 일상으로 자리 잡을 무렵이었다. 인턴이라는 두 글자가 진하게 인쇄된 ID 카드를 목에 건 채로 방금 막 올라온 오후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팀원 숫자대로 인쇄 중이던 백현은 넓은 사무실 입구가 소란해져 고개를 힐끗 돌렸다. 자신은 사무실에서 가장 구석진 복사기 앞에 서 있었다. 인턴...
이렇게 심장이 빠르게 뛴 적은 없었다. 얼굴로 온 몸의 피가 솟구치는 것 같다. 아마 새빨개졌을 거야. 쿵, 쿵, 쿵, 쿵, 쿵. 일정하면서도 점점 더 빨라지는 심장박동은 어쩜 아프기까지 하다. 갑작스레 올라왔던 열기는 물러나면서 팔뚝에 전율을 일으키고 만다. 그 자리에 돋아나는 소름이, 천천히 식어가는 얼굴이, 그러나 여전히 뻐근한 갈비뼈 한 쪽이 비웃듯...
언제부터였을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비가 오는 걸 참 좋아했다. 아빠라고 부를 사람이 있을 때는- 그는 베란다에 있는 조그만 티 테이블에 앉아서 이야기를 듣곤 했다. 아빠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주며 이것저것 젊은 시절과 학창시절 이야기를 풀어놓곤 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그 이야기들이 좋았다. 그리고 비가 오는 날이 좋았다. 제일 좋은 건 주말에 비가 오...
후, 하고 실없이 내뿜는 마지막 담배 연기가 하늘에 희뿌옇고 흐린 물감처럼 번져 간다. 하늘도 오늘따라 드럽게 안 예쁘다. 늘 별들이 총총히 떠 있던 하늘은 온데간데 없이 칠흑같이 까만 어둠만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언제쯤 다시, 네가 좋아하던 별이 아름답게 수놓인 하늘을 볼 수 있는 걸까 싶다. 찬열은 돛대였던 담배의 꽁초를 손가락을 툭 ...
한동안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이 그저 그 비뚤하고도 짧은 문장을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또 읽었다. 글씨체는 아주 어린 아이의 것은 아니었다. 중학생… 즈음의 박찬열의 글씨체였던가. 백현은 지금보다 정리가 덜 되어 삐죽이 선이 튀어나간 알파벳들 위로 엄지손가락을 살짝 쓸어 보았다. 너는 얼마만큼의 고민과, 어느 정도의 확신과, 그리고 얼마나 깊은 마음으로 이 ...
얼마나 오랫동안 그렇게 마주본 채로 서 있었는지 - 정확히 말하자면 백현은 쪼그려 앉고 찬열은 선 채로 - 잘 모르겠다. 백현은 한동안 가만히 있다가 뒷머리를 긁적이는 찬열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의 두 눈에 맺혀 있던 눈길은 천천히 목, 상체, 다리를 지나 찬열의 신발 끈에서 멎었다. 양 쪽 대칭을 하고 꼼꼼히 매여 있는 리본. 멋쩍게 뒤통수에 올라가 ...
w. Rotte 간만에 데이트 계획을 세워 놨더니 꼴에 여름이랍시고 얼굴에 정통으로 내려쬐는 햇살이 너무 강렬해서 저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그래서 보이는 곳 아무데나 들어가서 잠깐 열 오른 얼굴을 식힌 다음에 원래 목적지였던 전시회장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내가 바보지. 그러면서도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행동과는 다르게 찬열은 마련된 진열대마다 ...
조용한 포스타입에 소소하게 리퀘박스 오픈했습니다 :D ! 꼭 읽어 주세요 ! * 오직 '찬백' 리퀘박스입니다. * 대부분 3000자 이내의 단편으로 연성됩니다. * 리퀘는 순서대로가 아니며, 특별한 기한 없이 게시됩니다. * 이전에 연성한 주제/내용과 유사한 리퀘, 그리고 무성의한 리퀘는 자체 필터링 합니다. * 무조건적으로 수위만 들어가는 글은 역량이 부...
찬백쓰기 좋아하는 연성러입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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